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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로 돌아와야 할 충남의 도난문화재 7. <차일석, 작지만 엄연한 묘역의 구성물- 아산 아산리 김옥균선생 유허 내 차일석>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2.05.02 조회 92

차일석, 작지만 엄연한 묘역의 구성물

제자리로 돌아와야 할 충남의 도난문화재-아산 아산리 김옥균선생 유허 내 차일석


신고자가 보낸 차일석이 방치되어 있는 사진

▲ 신고자가 보낸 차일석이 방치되어 있는 사진


방치된 차일석의 없어진 현장 모습

▲ 방치된 차일석의 없어진 현장 모습



2014년 차일석 이탈 신고
현장 조사나갔으나 사라져
참배문화 엿볼 수 있어 가치


2014년 1월 26일, 김옥균선생 유허에서 이탈한 차일석이 주차장 앞에서 발견된다. 

이를 지나가던 방문객이 아산 시청에 사진과 함께 신고하였고, 아산 시청은 2014년 1월 27일 곧바로 현장 조사를 나갔으나 차일석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이 차일석은 김옥균선생 유허의 일부로 1912년 12월 3일 후손들이 묘를 조성할 때 같이 세워진 것이다. 

묘역의 주인인 김옥균은 일찍이 개화사상을 받아들이고 조선의 근대화에 앞장선 인물이다. 1884년 12월 4일,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목표로 박영효, 서광범 등의 개화당 동지들과 함께 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 만에 실패로 끝이 났다. 이후 김옥균은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상해로 건너간다. 김옥균은 상해에서 고단한 망명생활을 이어가던 중 조선에서 온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되었다.

본래 김옥균의 묘는 일본 도쿄 아오야마(靑山) 공원묘지의 외국인 묘역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1894년 김옥균의 사체가 능지처참을 당한 뒤 일본인 지인들이 김옥균의 의복과 머리카락 등을 수습하여 외국인 묘역에 안장했다. 이후 1912년 김옥균의 양자인 김영진(金英鎭)이 일본 정부와 친일파 유혁로(柳爀魯)의 도움을 받아 이장했다고 한다.

김옥균선생 유허에는 봉분과 함께 석상, 묘비, 망주석(望柱石) 1쌍, 문인석(文人石) 1쌍, 석등, 석양(石羊) 등의 석물이 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차일석도 있었다. 

차일석은 후손들이 참배할 때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차일(遮日)을 고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한 것이다. 경우에 따라 2개 혹은 4개가 설치된다. 남아 있는 다른 차일석을 보면, 기둥 위에 공이 얹어져 있는 형태로, 원형 부분의 아랫 부분에 고정끈을 묶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차일석은 다른 석물들과 함께 묘역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당시까지의 묘제 및 참배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할 수 있다. 이처럼 차일석은 김옥균선생 유허를 구성하고 있는 엄연한 문화재인 것이다. 차일석의 행방은 여전히 알 수 없다. 하루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김철현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연구원